본문 바로가기

더 배우고 더 나누고 다시 사랑하고

백지 1일차

 

 

몇 해 전부터 고민했었다. 곧 난파할 것 같은 이 작은 배에서 난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만기명퇴는 아직 몇 해가 남았고 그때까지 가서 자연스러운 명퇴를 하면 내 인생에 너무 수동적인 모습으로 점 찍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목돈을 조금 챙기면서.. 언제 어떻게.. 엑소더스를 할 수 있을까..

혹시 회사에서 경영에 관여하는 조금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머리에서

'혁신' 한답시고 조기명퇴를 통해서 자기의 색깔을 내보이고 싶지 않을까..

신이 아직 나를 사랑한다면 이런 시나리오 밖에 없지 않나 싶었다.

 

... 2주전 갑자기 명퇴 공지가 나왔고 나는 준비된 사람 마냥 '저요' 손을 들었다.

 

올해 아니 작년 2024년 여름 부터 게임회사와 대기업에서 대규모 희망퇴직과 명예퇴직을 한다는 뉴스를 보고는 전세계적으로 어느정도 경제적 불황이 예상되나 생각했었는데 내가 다니던 회사도 이런 사회분위기에 발을 맞춘 모양새다. 이런 명퇴시행으로 몇 명을 정리했다라는 게 그들의 성과가 될 수도 있겠고.

 

2024년 연말로 강퇴일이 박혀 버려서, 여튼 짧은 시간에 급하게 인수인계를 마쳤다.

그리고 정말 성심껏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는 미안하다는 인사와 함께 오랜 회사생활에 마침표를 눌렀다.

 

사십 중반, 오십 넘어 회사를 나오면 사실 어디 지원해서 비슷한 포지션으로 다시 회사를 들어간다는 건 어렵다.

하지만 마냥 나오고는 싶었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야생으로 부터 나를 지켜주는 방호벽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교도소 높은 담벼락 같았고 굴레 같았다.   

수동적으로 일하면서 월급 챙기기는 참 편한 회사였지만

동료에게 최선을 다하자 라는 말을 하면 욕이 되는 느낌,  

 

내가 손절했던 주식들은 대세 상승을 맞았던 경우가 좀 있었는데

내가 탈출했던 과거 회사들은 모두 망했다. 

이 마지막 회사는 당장 망할 염려는 없지만 아마 다른 방법으로 정리가 되어야만

그래도 이제 몇 남지 않은 좋은 동료들을 살리는 길일 것 같다.

 

나는 무사히 나왔고 그래서 나의 새해는 새햐얀 백지로 2025년을 맞이하게 됐다.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라는 성경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 새해 첫날이다.

 

'더 배우고 더 나누고 다시 사랑하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봄, 새로운 희망  (0) 2025.02.22
최근 이마트 3대 굿잡  (0) 2025.02.22
삶이 하루살이 같다  (2) 2024.09.15
Vector  (0) 2024.08.22
배고프다..  (0) 2024.08.20